오늘의 철학 260128 이○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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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연수새누리2 조회 30회 작성일 26-01-28 13:52본문
오늘의 철학
26.01.28
이◯문
저는 14~15세 무렵부터 점점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. 겉으로는 착하고 어린 소년이었지만, 아버지의 술 문제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. 집안일과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고, 학교생활에도 흥미를 잃어 수업을 빠지기 시작했으며 숙제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. 집에서는 늘 불평불만이 가득했고, 짜증만 늘어갔습니다.
중학교 2학년 때는 담배까지 피우게 되었지만,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피우다 곧 그만두었습니다. 그나마 정학까지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, 지금 와서는 감사한 마음마저 듭니다. 만약 그 이전부터 담배를 계속 피웠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.
어릴 적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. “당신은 아이들 보기가 무섭지 않소?”라고 했을 때, 아버지는 술 한잔만 마시면 스스로를 대단히 위대한 사람처럼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. 저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늘 정신이 없었고, 저는 너무 커버린 탓에 반항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.
이후 아이들 엄마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지만, 결국 술 문제로 인해 이혼하게 되었습니다. 그러던 중 설날에 동생이 저를 찾아와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함께 가자고 했고, 저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습니다. 오산이라는 동네에서 한두 달 정도 일을 했지만, 결국 술로 인해 동생에게마저 버림받고 말았습니다.
술을 마시고 블랙아웃이 되었을 때, 저는 다른 하숙집으로 옮겨졌고 돈 한 푼 없이 그대로 팽개쳐졌습니다. 갈 곳이 없었던 저는 하숙집에 있던 막걸리 2~3병을 마시고, 시민들에게 돈을 빌려 아무 데나 가려 했지만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. 희미하게 들려온 소리만 잠깐 기억이 났고, 눈을 떠보니 119 구급차 안이었습니다. 구급대원이 정신이 드느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.
그렇게 수원의료원으로 옮겨졌고, 그때의 제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. 퇴원을 하려 하자 병원비를 내라는 말을 들었지만, 저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 난감하기만 했습니다. 결국 병원비를 내지 못한 채 나와 수원역으로 향했고, 그곳의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.
그곳에서 생활하며 돈을 벌기는 했지만, 그 시간들은 제게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. 너무나도 처참한 나날이었습니다. 돈을 벌어 오기만 하면 함께 잠을 자던 사람들이 매달리며 술 한잔 사 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. 이런 것이 마치 그런것처럼 행동하자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.


